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밀리터리 SF 소설 중에 영화로 제작했지만 오히려 그 B급 감수성으로 원작보다 유명한 스타쉽 트루퍼스.
그 소설과 맞먹을 걸작이 또 하나 있으니 절판되었다가 황금가지에서 재판한 '영원한 전쟁' 이다.
작가 자신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경험에서 기반해 쓴 소설이라 그런가
소설의 초반 분위기는 전쟁이 필연적이다고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반전주의다.

소설 내용은 주인공인 만델라가 지적 육체적으로 엘리트인 남녀 최정예 징집법에 의해
지구권의 통합군 개념에 가까운 UNEF (국제연합 탐사군) 에 강제 입대해 외계 종족인
토오란과 전초전을 벌였다가 한번 제대하고 다시 재입대를 해 소령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흐른 세월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사이에 변해가는 지구권의 모습과 사회와 괴리된
만델라의 모습을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었다가 제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보여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다르게 외계와의 전쟁만으로 통합지구사회와 괴리될 수 없으니
추가 설정으로 등장한게 콜랩서 점프. 작중 설명만으로 유추해보면
블랙홀을 이용한 시공간 점프에 가까운데 이 콜랩서 점프로 인해
만델라 일행이 소속된 집단은 몇 년의 시간을 보내는데 지구 사회는 몇 십년
몇 백년의 시간이 흘러서 사회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군인 이란 클리세가 극대화된다.

만델라는 토오란과의 전초전을 준비하는 시기부터 입대한 경우라
그 때까지 인류는 제대로 전쟁을 준비하지 못 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타쉽트루퍼스에서도 나온 강화복 - 파이팅 슈츠 - 초기에는 이 파이팅 슈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에 훈련과정에서 사상자나 부상자가 셀 수 없니 나왔고
그 부작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델라 일병은 점점 숙련된 병사로 거듭난다.
토오란 외계인들과의 초전에서 만델라 일행은 승리하지만 그 승리도
숙달된 훈련과 파이팅 슈츠의 덕분이 아닌, 군대에서 인위적으로 주입된
'의사기억'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후최면 학습으로 잔인성을 표출한 경우다.
그렇게 2년에 걸친 복무가 끝나고 만델라는 함께 복무하면서 '의무 관계' 가 아닌
사랑에 기반한 연인 메리게이와 인연을 이어갈 생각으로 제대를 신청하고
군대에서 지구사회로 돌아왔지만 콜랩서 항법에 의해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구는 이성애가 아닌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권장받고, 국가사회는 붕괴했으며
히피이즘과 지역, 개인사회가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인구절벽에 봉착한 사회로 변했다.
이런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델라와 메리게이였지만
그 과정에서 둘 다 부모를 잃고 군대로 재입대해 군대에서나마
같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재입대 결과 둘은 다른 부대로 배치되고
콜랩서 항법이 있는 사회에서 다른 부대로 간다 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게된다는 의미이길래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만델라는 소령의 지위로 새로운 부대를 받게 되지만
새로운 부대는 동성애가 당연시되고 이성애가 배척받는 생각을 가진 곳이라
만델라는 작중 표현으로 올드 퀴어 (늙은 변태) 취급을 받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남게된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전쟁을 치룬 만델라와 병사들은
다시 지구에 귀환하고 이번에야말로 제대하겠다고
결심한 만델라를 또다시 바뀐 지구가 환영하는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유지되며
전쟁 속에서 군인들이 어떤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지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분명 필요한 전쟁이었겠지만
그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아니라
뒤에서 전쟁을 후원한 일반인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라는 메시지는
지금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쟁 동안에도 계속 변화해 온 사회와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재입대를 결심한 주인공과 연인의 모습은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군인들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눈팔기

도서관에 신청한 나츠메 소세키 전집도 슬슬 막바지.
한 달에 2권 신청받으면서 들어오는 기간도 늦으니 구립 도서관 서비스가 다 그렇죠 뭐..

나츠메 소세키의 작풍이라면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가 보기에 시대상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작가의 고민거리를 공유한다
그런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한눈팔기' 는 작가의 자전소설이라 싶을만큼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주인공인 겐조의 삶은 소세키의 삶과 비슷하고
당시 하이칼라 지식인의 무력함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무력함을 자조하고 있다.

영국유학을 다녀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겐조에게 과거가 덮쳐온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과거. 양자로 살던 시절 양아버지와 양어머니가
겐조를 찾아와 돈을 요구한다. 거기에 본가의 누나와 형, 처갓집까지
외국까지 다녀온 하이칼라 가 능력이 없을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겐조에게 기대를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겐조 본인도 딱 잘라 거절하면 좋겠지만
본인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거절하지 못하고 불편한 심기를 아내와 나누지도 못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많은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현실은 앞마 보고 가기에 자신을 얽매고 있는 과거가 버겁기만하다.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겐조가 마지막에 자조적으로 서술하는 구절은 작가인 소세키가
자기에게 내뱉는 말인 듯 하다. 나츠메 소세키는 고민을 작중에서 극복하기보다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들이라며 솔직히 보여주면서 
고민하기에 인간이다 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문학을 처음으로 접한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입시와 판타지 소설 본다고? 제대로 세계문학은 접하지 않았다가
대학 들어가고 나서 서양사 수업을 듣던 중 담당교수가 하필
러시아 문학 빠돌이 -_-)z 결국 그 학기는 러시아 문학과 영화로
레포트를 빼곡이 채웠고 학기 끝나고도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기 시작한게
러시아 문학 덕질의 시작이었다 -_-)ㅋ

이번 안나 카레니나 번역은 문학동네에서 펴낸 번역판.
박형규 교수가 번역을 했고 2010년에 나온 책이니 
시기상으로 최신에 가까운 번역본이다. 

스토리는 제목인 안나 카레니나 에 집중해서 보자면 단순하다.
사랑 없이 결혼한 유부녀 안나 에게 브론스키 라는 청년이 열정적으로
접근해 사랑에 눈을 뜨고 브론스키에 대한 애정만으로 남편도 아이도
버리고 불륜을 시작했다가 다시 남겨진 아들에 대한 애정에 갈팡질팡하며
정신적으로 부서지고 무너지다가 마지막에는 열차투신으로 끝.

하지만 이 단순한 플롯 안에 레프 톨스토이는 당대 러시아 사회에 대한
심도깊은 해석과 귀족 농노 사회주의자 다양한 집단에 대한 묘사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소설 첫 문장처럼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수많은 부부를 그리고 있다.

타인이 보기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사랑만으로 불륜을 시작한 안나
안나를 사랑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냉정하고 일에만 몰두한 알렉세이
자유롭고 감정에 솔직한 삶을 살기 위해 출셋길을 포기한 브론스키
불륜에 빠진 남편을 두고 있지만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마음을 다진 돌리
세상일을 전부 감정에 따라 처리하고 즐기기만 하는 스테판
농노-노동자에 대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지만 귀족-계몽자 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레빈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서술은 다양하다 못해 치열할 정도.
거기에 삶과 죽음, 종교, 결혼, 계급, 농민, 노동자, 정말 온갖 고민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톨스토이가 대단한 점이 이런 문제는 작가가 신의 시점에서
판단내리지도 않고 담담히 서술했다는 점이다. 독자가 작품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작가에게 기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작가의 판단' 을 보류하며
대신 작가 자신이 간접경험이던 직접경험이든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라고 말하듯.

소설에서 큰 축이라면 안나 카레니나의 결혼 생활과 레빈의 결혼 생활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져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가정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면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했고, 한번 구애에 실패했던 레빈은
자신의 영지에서 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레빈과 마찬가지로 연애에
실패했지만 여행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았던 키티에게 다시 구애한다.
감정에 충실했던 안나를 둘러싼 브론스키, 알렉세이 두 남자는 불행해졌지만
감정에 충실하면서 감정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키티와 레빈 부부는 행복해졌다. 굳이 말하자면 이 두 부부를 보면서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학생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뭐가 남을까' 였다에
강박감이 있었다.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까 모르는 세계문학 / 필독서라면
그 경우는 더 심해진다. 하지만 읽으면서 확실하게 '이거다' 싶은 부분은 없었다.
다양한 인물상과 사회상에 대한 묘사, 심리서술, 사회에 대한 고찰은
대단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런 서술들 중에서 마음에 딱 이거다 하고
확실하게 기록을 남겨주거나 어딘가에 써두고 싶은 구절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질테고
그럴 바에는 지금 남아있는 여운만이라도 적어두는 편이 더 생산적이다
그 생각에 적어준다면 나중에 다시 이 포스팅을 보면서 인상적인 내용이 생각날테니까 

신이 없는 달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 줄여서 미미여사의 책은 화차나 모방범 보다
에도시대를 다룬 2막 시리즈가 주인장 취향에 더 맞더라.
내가 일본사에 흥미를 많이 가져서 그런가 아니면 일본어씹덕?(그냥덕후지)이라
그런가 일본드라마 / 애니를 많이 봐서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미미여사의 소설 2막 에도시리즈 최신판 '신이 없는 달'
제목의 의미는 일년 열두달 중에 일본 이즈모 신사에 신이 모이는 달 10월을
일본에서는 신이 없는 달(칸나즈키) 라 칭하며 사람을 지켜보던 신들이
없는 달이니 행동에 조심을 하도록 근신하고 조신하게 행동한데서 유래했다는데
책의 내용은 그 달 하나만 이야기한게 아니라 일년 열두달마다 테마를 잡고
한달에 한개씩 단편을 써서 모은 단편집에 가깝다.
단편집이니만큼 내용도 가지각색이고 분위기도 일관되지 않아
어떤 내용은 단편인데도 무겁고 어떤 내용은 피식하면서 웃음이 나올만큼 가벼우니
이걸 쓴다고 미미여사는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맸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재미있다고 술술 읽혀지니 이게 또 소설의 신비함이 아닐까

단편집 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라면 '얼굴바라기'
자기 스스로 얼굴이 못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추녀에게 
마을에서 유명한 미남이 구혼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인데
이게 흔한 제 눈에 콩깍지가 아니라 나름대로 애잔한
선대의 인연이 끼어들어 생긴 저주에 가깝고
그 저주를 풀지 말지 고민하는 추녀 며느리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보는 입장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게 했다
'저주를 풀어도 사랑이 그대로일까' 는 동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소설에도 나올법한 내용이라 나름 고민하게 했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