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올빼미 깃털, 백합꽃, 오각형으로 배치된 양초로 장식된 공터에서 17세 소녀의 나체시신이 발견된다.
주인공들인 미아와 뭉크가 소속된 수사팀은 소녀가 살던 보육원부터 시작해 탐문에 들어가지만
별다른 단서는 나오지 않고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던 중 피살자가 감금당한 상태에서
고문 받고 있는 장면이 실린 동영상이 수사팀에 제보되고 사실 이 살인사건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 고의적으로 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는 책에서 먼저 나온 미아와 뭉크 일행의 두번째 시리즈라는데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골라서 읽었나면
도서관에 신청한 스티븐 킹의 신작 옆에 꽂혀있길래 어떤 시놉시스인가 싶어
집어서 서문 정도만 읽어봤는데 사건의 시작이 상당히 몽환적이라 취향에 맞더군요.
사건 분위기는 상당히 으스스합니다. 피살자들이 제의적인 목적의 제물처럼 장식되고
범인의 의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 동떨어져 있지요. 거기에 주인공들인
미아와 뭉크 역시 정상적인 화자가 아니라 각자 문제가 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충격에 헤어나지 못한 뭉크. 약물에 중독되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희망하지만 예리한 직감으로 진실을 밝히는 미아
이 둘이 화자를 맡아서 소설 전반은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입니다.
하지만 작중 분위기가 몽환적이다 와 소설의 서사가 어울리느냐 가 문제죠.

전작을 보지 않고 이 책만 본 시점에서 평가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설정을 너무 밀어붙인다는 욕심이 과한듯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인데 미스터리보다 환타지적인 분위기가 난다면
미스터리 소설로의 서사는 실패한 셈이죠. 그런데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
게다가 범인은 작중 설정상으로 주인공들과 아예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탐문과 조사로 잡아내서 법의 심판을 맡기기 힘들다는 소리죠.
하지만 명색이 미스터리소설인데 범인은 잡아야죠? 그래서 무리수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살해되기 전 피살자가 고문당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
피살자와 비슷한 방식을 처리당한 개와 고양이의 사진
갑자기 등장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하는 노인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 이상 범인을 잡아내기 쉬울 정도로
단서와 제보자들이 속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무얼 하냐
헛발질만 계속 하네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에 계속 시달리는 미아
이혼한 아내와 재혼 문제로 고통에 시달리며 판단력이 흐려진 뭉크
이쯤 오면 주인공이 아니라 아예 조연이라 해도 이야기 진행에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이 모든 고민과 갈등이 결국 사건해결에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작가가 나름대로 고민해 사건의 해결과 고민의 해결을 같이 시도했다는 냄새가 나죠.
하지만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형사라는 의무를 다하는 지금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형사님들이 더 대단해보여요.

결국 마지막까지 와서도 이런 난장판은 변하지 않습니다.
범인은 유유자적하게 혼자 놀고 있고 진실은 어디선가 날아든 제보와 단서로
해결되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해결이 의미가 있을까요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테리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오랫만에 지뢰를 밟은 기분이네요.

엔드 오브 왓치

스티븐 킹의 소설 빌 호지스 3부작 중에서 1부의 메르세데스 킬러를 기억하십니까
남의 차를 훔쳐다 사람들이 모여든 취업박람회장에 들이박아서 부상자와 사상자를 냈고
은퇴한 노인들이 컴퓨터에 약하다는 점을 악용해 정신적으로 몰아넣어서 자살을 유발하고
아이들이 모인 콘서트장에서 베어링볼과 폭약을 조합해 자살폭탄테러를 내려던 미치광이.
다행이 1부 주인공 빌 호지스와 동료들 손에 뇌손상이 올만큼 얻어맞고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서 병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메르세데스 킬러. 그가 돌아왔습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있으면서 의사의 신약실험대로 살다가 생을 마칠 줄 알았던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는 투약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뇌가 반쯤 박살난 댓가인지
염력과 남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 는 두 가지 초능력에 눈을 뜬다.
처음에는 초능력이라 해도 별로 대단하지 않고 사용도 제한이 있어 실망하지만
곧 이 초능력의 멋진 활용법을 발견해 브래디는 초능력을 사용해 거대한 사업 을 꾸민다.
한편 브래디를 병원에 보내버린 빌 호지스와 친구들은 탐정회사 파인더스 키퍼스를 꾸려
경찰에서 은퇴한 뒤 제2의 노년을 보내는데 이들은 최근 일어나는 자살 사건을
수사하면서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자살 사건들에서 하나의 게임기와 Z 라는 이니셜을
발견하고 자살 사건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연쇄살인사건이라 추리하는데

1부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좀 갔지만 어떤가
1부도 빌려서 읽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오랫만에 빌 호지스 3부작을 다시 다 빌렸다 (으엥?)
아쉬운 부분을 보자면 역시 악당의 어리숙함. 작중 언급으로 확실히 머리는 좋고
창의력도 있는데 범죄를 꾸미면서 치밀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울분을 사회에 풀어내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자기혐오의 화신.
그렇기에 얼핏 완벽하다는 계획을 짜면서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게 돌고 돌아서
자신의 몰락을 가져왔으니 어쩌랴 그게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한 실패자의 행동방식인걸
식물인간인 빌런이 다시 활약하기 위해 초능력을 두 가지나 줬지만
작중에서 활용한 초능력은 하나. 아마 글을 쓰면서 스티븐 킹 영감님이 까먹었거나
필요없다 싶어서 쳐냈지 않았을까 상상은 한다. 그래도 다른 초능력도 활용했으면
이야기 구성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지만 어쩌겠어 작가의 마음인걸
그래도 구식 게임기를 이용해서 청소년들에게 접속하고 그 나이대 청소년들이 가진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 한 구석의 어둠을 살살 긁어내 자살로 인도하는 모습은
작중 표현대로 '자살의 황태자' 다웠다. 그리고 다양한 문제들로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눈물도 찔끔 났고 말이지. 말했던가 자살자를 구할 수 있는 이는 슈퍼맨 뿐이라고

왕년의 형사 빌 호지스 탐정은 1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이 문제로 활약하지 못했다가
2부에서는 그럭저럭 조언자의 역할을 보이나 싶더니 3부에 들어서 불치병 판정.
처음 그 사실이 소설에서 나올 때 이게 빌 호지스의 약점이 되겠지 예상했는데 
왠걸 더 날아다닌다. 역시 사람은 죽음이 닥쳐올 때 비로소 100% 자기 힘을 낼지도
아니면 소설 마지막에 빌 호지스 형사의 묘비에 새겨진 '임무 완료' 라는 말처럼
빌 호지스 형사에게 메르세데스 킬러는 자기가 마지막까지 맡은 임무였으리라.

악당과 형사의 최후의 결투까지 가는 과정은 형사와 악당 둘 다 가진
신체적인 약점 때문에 치밀하면서도 이 두 사람 저러다 픽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최후의 결투 자체는 좀 싱겁게 끝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건조했던 빌 호지스 형사의 에필로그 때문인지
보면서 역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은 다른 사람의 선의 뿐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의 성

도서관에 정기구입도서들이 들어왔길래 어떤 책들을 볼까 골라보다가
표지의 손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고 골라온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펼져볼 때는 책의 활자도 적당하고 줄간격도 촘촘하지 않아서 설렁설렁 읽기 편하겠다 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책을 던져버렸다. 이 기분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찝찝하고 불쾌하고 속에 뭔가 얹혀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기분인데
그렇다고 안 봤다고 정신승리하고 빨리 다른 책 잡아서 힐링하기엔
너무 씁슬한 이런 기분을 정말 뭐라고 해야할지 표현하기 힘드네요.

선코트마치다 403호,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었다!
2002년 전모가 드러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밀도 높은 미스터리 『짐승의 성』. 혼다 테쓰야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야마다 후타로 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월간지 '소설 추리'에 연재되던 때부터 끔찍한 범죄와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문제작이라 불리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년 넘게 선코트마치다라는 맨션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온 상처투성이 소녀 마야.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은 음식물 쓰레기가 썩은 듯한 역겨운 냄새와 함께 역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있는 아쓰코를 마주한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시인하지만, 맨션 욕실에서는 엄청난 양의 루미놀 반응과 무려 다섯 사람 분의 DNA가 검출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하는 끔찍한 진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지옥을 만들어낸 요시오라는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한편 같은 동네의 어느 연립주택, 신고는 사랑스러운 연인 세이코와 동거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자 곰을 닮은 남자가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먹고 있다. 세이코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소개하지만, 예전에 보여줬던 사진 속의 아버지와는 분명 다르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남자의 가방 속에서 발견한 검붉은 액체는 대체 뭘까? 남자의 수상쩍은 행동을 감시하던 신고는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보통 책을 고를 때, 먼저 책을 펼쳐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고
소설이라면 앞이나 뒤로 넘어가 책의 시놉시스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서문 정도 읽어보고 여기까지 통과하면
좋은 책이다 싶어 사두는데, 근처에 도서관이 생긴 뒤로는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정을 추가해둔다. 통독으로 빠르게 읽어보고
감동을 주는 책이라면 바로 서재에 추가한다. 그렇게 보자면
짐승의 성은 서재에 들여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작가인 혼다 테스야가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사건 관련 조사는 성실히 한 흔적이 책 중간중간마다 보이지만
너무 성실히 해서 이 책은 감점대상이다. 아니 그래도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다듬어야 하잖아.
당시 사건이 아무리 자극적이었다 해도 소설에서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인행각이나 시체처리의 묘사에 공을 들이나
거기에 고문과 학대를 과감하게 묘사하고 거기에 당해
정신이 부서져 사건 가해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가족의 모습까지
가감없이 묘사하면 보는 사람은 도대체 뭘 기대하며 이 소설을 읽어야하나
보통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의 통쾌한 해결이나
기묘한 추리트릭을 탐정 혹은 형사역을 맡은 주연들에 몰입하며
이들이 어떻게 트릭을 부수고 범인을 잡아내나 에 기대감을 갖는다.
그렇다면 짐승의 성은 추리소설로도 실책이다. 진범은 어떻게든
'처리' 되었지만,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의 손에 넘겨진게 아니라
결구 자신이 만든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의해 처분되었고
이마저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아 작중 형사의 언급으로
혹시나 진범이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여운을 남겨
불안감을 더 키운다. 물론 진범이자 만악의 근원이 살아있다면
생존자들이 불안에 떨테니 처분되었다 에 무게를 두지만
이런 엔딩은 어떻게 이런 인간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태어날 때부터
같은 인간을 먹이로만 보는 괴물을 처리할까 기대하며
이 끔찍하고 잔인한 연쇄살인사건을 지켜본 독자들을 배신한 행위다.

짐승의 성 의 소재를 제공한 실제 사건은 2000년대 후쿠오카 현
키타쿠슈 시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키타쿠슈 감금 살인사건이다.
한국 위키 백과에는 사건의 주범인 마쓰나가 후토시 에 대해서만 나와있지만
일본 위키 백과에 해당 사건의 개요나 피해자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도서관에서 아무에게나 빌려줘도 될 책이 아니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실화가 엽기살인사건이라지만
이 정도로 생생하게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고문방법을 묘사한 책을
어린아이도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 두다니. 
제정신인가 적어도 19금 표지라도 붙여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