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 개싸움


누군가가 풀어놓은 개들 속에 괴물로 변신하는 세포를 주입받은 개들이 있다.
개들을 회수하기 위해 쉴드는 데드풀을 고용하고 데드풀은 의뢰를 받아들인다.
마블 X-MAN 세계관에서 개 삐--- 로 유명한 데드풀이 개들을 회수하려고 뛰어다니는 이야기.

그래픽 노블로 보면 데드풀이 개드립을 치고 다중인격들이 태클을 거는 장면이 바로 이해가 되지만
소설이다 보니 만화처럼 직관적으로 그려낼 수 없고 대신 글자체를 바꾸는 방식을 사용.
이야기 내용은 별 특징이 없다. 히어로 공인 개또라이가 개사냥을 하다가 개꼴을 당하는 이야기.
하지만 데드풀이 괜히 데드풀인가 그런 이야기도 유쾌하게 꾸며내는 특기가 있으니
인기 없으면 바로 짤려나가는 미국 코믹스 시장에서 아직도 장수하지.
이야기는 별 내용이 없지만 화자의 개드립이 재미있는 소설.
데드풀 관련 만화도 한국에서 정발했으니 궁금하다면 사봅시다.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올빼미 깃털, 백합꽃, 오각형으로 배치된 양초로 장식된 공터에서 17세 소녀의 나체시신이 발견된다.
주인공들인 미아와 뭉크가 소속된 수사팀은 소녀가 살던 보육원부터 시작해 탐문에 들어가지만
별다른 단서는 나오지 않고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던 중 피살자가 감금당한 상태에서
고문 받고 있는 장면이 실린 동영상이 수사팀에 제보되고 사실 이 살인사건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 고의적으로 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는 책에서 먼저 나온 미아와 뭉크 일행의 두번째 시리즈라는데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골라서 읽었나면
도서관에 신청한 스티븐 킹의 신작 옆에 꽂혀있길래 어떤 시놉시스인가 싶어
집어서 서문 정도만 읽어봤는데 사건의 시작이 상당히 몽환적이라 취향에 맞더군요.
사건 분위기는 상당히 으스스합니다. 피살자들이 제의적인 목적의 제물처럼 장식되고
범인의 의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 동떨어져 있지요. 거기에 주인공들인
미아와 뭉크 역시 정상적인 화자가 아니라 각자 문제가 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충격에 헤어나지 못한 뭉크. 약물에 중독되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희망하지만 예리한 직감으로 진실을 밝히는 미아
이 둘이 화자를 맡아서 소설 전반은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입니다.
하지만 작중 분위기가 몽환적이다 와 소설의 서사가 어울리느냐 가 문제죠.

전작을 보지 않고 이 책만 본 시점에서 평가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설정을 너무 밀어붙인다는 욕심이 과한듯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인데 미스터리보다 환타지적인 분위기가 난다면
미스터리 소설로의 서사는 실패한 셈이죠. 그런데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
게다가 범인은 작중 설정상으로 주인공들과 아예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탐문과 조사로 잡아내서 법의 심판을 맡기기 힘들다는 소리죠.
하지만 명색이 미스터리소설인데 범인은 잡아야죠? 그래서 무리수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살해되기 전 피살자가 고문당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
피살자와 비슷한 방식을 처리당한 개와 고양이의 사진
갑자기 등장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하는 노인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 이상 범인을 잡아내기 쉬울 정도로
단서와 제보자들이 속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무얼 하냐
헛발질만 계속 하네요.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에 계속 시달리는 미아
이혼한 아내와 재혼 문제로 고통에 시달리며 판단력이 흐려진 뭉크
이쯤 오면 주인공이 아니라 아예 조연이라 해도 이야기 진행에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이 모든 고민과 갈등이 결국 사건해결에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작가가 나름대로 고민해 사건의 해결과 고민의 해결을 같이 시도했다는 냄새가 나죠.
하지만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형사라는 의무를 다하는 지금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형사님들이 더 대단해보여요.

결국 마지막까지 와서도 이런 난장판은 변하지 않습니다.
범인은 유유자적하게 혼자 놀고 있고 진실은 어디선가 날아든 제보와 단서로
해결되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해결이 의미가 있을까요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테리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오랫만에 지뢰를 밟은 기분이네요.

엔드 오브 왓치

스티븐 킹의 소설 빌 호지스 3부작 중에서 1부의 메르세데스 킬러를 기억하십니까
남의 차를 훔쳐다 사람들이 모여든 취업박람회장에 들이박아서 부상자와 사상자를 냈고
은퇴한 노인들이 컴퓨터에 약하다는 점을 악용해 정신적으로 몰아넣어서 자살을 유발하고
아이들이 모인 콘서트장에서 베어링볼과 폭약을 조합해 자살폭탄테러를 내려던 미치광이.
다행이 1부 주인공 빌 호지스와 동료들 손에 뇌손상이 올만큼 얻어맞고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서 병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메르세데스 킬러. 그가 돌아왔습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있으면서 의사의 신약실험대로 살다가 생을 마칠 줄 알았던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는 투약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뇌가 반쯤 박살난 댓가인지
염력과 남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 는 두 가지 초능력에 눈을 뜬다.
처음에는 초능력이라 해도 별로 대단하지 않고 사용도 제한이 있어 실망하지만
곧 이 초능력의 멋진 활용법을 발견해 브래디는 초능력을 사용해 거대한 사업 을 꾸민다.
한편 브래디를 병원에 보내버린 빌 호지스와 친구들은 탐정회사 파인더스 키퍼스를 꾸려
경찰에서 은퇴한 뒤 제2의 노년을 보내는데 이들은 최근 일어나는 자살 사건을
수사하면서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자살 사건들에서 하나의 게임기와 Z 라는 이니셜을
발견하고 자살 사건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연쇄살인사건이라 추리하는데

1부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좀 갔지만 어떤가
1부도 빌려서 읽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오랫만에 빌 호지스 3부작을 다시 다 빌렸다 (으엥?)
아쉬운 부분을 보자면 역시 악당의 어리숙함. 작중 언급으로 확실히 머리는 좋고
창의력도 있는데 범죄를 꾸미면서 치밀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울분을 사회에 풀어내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자기혐오의 화신.
그렇기에 얼핏 완벽하다는 계획을 짜면서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게 돌고 돌아서
자신의 몰락을 가져왔으니 어쩌랴 그게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한 실패자의 행동방식인걸
식물인간인 빌런이 다시 활약하기 위해 초능력을 두 가지나 줬지만
작중에서 활용한 초능력은 하나. 아마 글을 쓰면서 스티븐 킹 영감님이 까먹었거나
필요없다 싶어서 쳐냈지 않았을까 상상은 한다. 그래도 다른 초능력도 활용했으면
이야기 구성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지만 어쩌겠어 작가의 마음인걸
그래도 구식 게임기를 이용해서 청소년들에게 접속하고 그 나이대 청소년들이 가진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 한 구석의 어둠을 살살 긁어내 자살로 인도하는 모습은
작중 표현대로 '자살의 황태자' 다웠다. 그리고 다양한 문제들로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눈물도 찔끔 났고 말이지. 말했던가 자살자를 구할 수 있는 이는 슈퍼맨 뿐이라고

왕년의 형사 빌 호지스 탐정은 1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이 문제로 활약하지 못했다가
2부에서는 그럭저럭 조언자의 역할을 보이나 싶더니 3부에 들어서 불치병 판정.
처음 그 사실이 소설에서 나올 때 이게 빌 호지스의 약점이 되겠지 예상했는데 
왠걸 더 날아다닌다. 역시 사람은 죽음이 닥쳐올 때 비로소 100% 자기 힘을 낼지도
아니면 소설 마지막에 빌 호지스 형사의 묘비에 새겨진 '임무 완료' 라는 말처럼
빌 호지스 형사에게 메르세데스 킬러는 자기가 마지막까지 맡은 임무였으리라.

악당과 형사의 최후의 결투까지 가는 과정은 형사와 악당 둘 다 가진
신체적인 약점 때문에 치밀하면서도 이 두 사람 저러다 픽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최후의 결투 자체는 좀 싱겁게 끝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건조했던 빌 호지스 형사의 에필로그 때문인지
보면서 역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은 다른 사람의 선의 뿐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의 성

도서관에 정기구입도서들이 들어왔길래 어떤 책들을 볼까 골라보다가
표지의 손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고 골라온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펼져볼 때는 책의 활자도 적당하고 줄간격도 촘촘하지 않아서 설렁설렁 읽기 편하겠다 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책을 던져버렸다. 이 기분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찝찝하고 불쾌하고 속에 뭔가 얹혀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기분인데
그렇다고 안 봤다고 정신승리하고 빨리 다른 책 잡아서 힐링하기엔
너무 씁슬한 이런 기분을 정말 뭐라고 해야할지 표현하기 힘드네요.

선코트마치다 403호,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었다!
2002년 전모가 드러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밀도 높은 미스터리 『짐승의 성』. 혼다 테쓰야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야마다 후타로 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월간지 '소설 추리'에 연재되던 때부터 끔찍한 범죄와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문제작이라 불리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년 넘게 선코트마치다라는 맨션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온 상처투성이 소녀 마야.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은 음식물 쓰레기가 썩은 듯한 역겨운 냄새와 함께 역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있는 아쓰코를 마주한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시인하지만, 맨션 욕실에서는 엄청난 양의 루미놀 반응과 무려 다섯 사람 분의 DNA가 검출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하는 끔찍한 진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지옥을 만들어낸 요시오라는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한편 같은 동네의 어느 연립주택, 신고는 사랑스러운 연인 세이코와 동거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자 곰을 닮은 남자가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먹고 있다. 세이코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소개하지만, 예전에 보여줬던 사진 속의 아버지와는 분명 다르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남자의 가방 속에서 발견한 검붉은 액체는 대체 뭘까? 남자의 수상쩍은 행동을 감시하던 신고는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보통 책을 고를 때, 먼저 책을 펼쳐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고
소설이라면 앞이나 뒤로 넘어가 책의 시놉시스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서문 정도 읽어보고 여기까지 통과하면
좋은 책이다 싶어 사두는데, 근처에 도서관이 생긴 뒤로는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정을 추가해둔다. 통독으로 빠르게 읽어보고
감동을 주는 책이라면 바로 서재에 추가한다. 그렇게 보자면
짐승의 성은 서재에 들여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작가인 혼다 테스야가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사건 관련 조사는 성실히 한 흔적이 책 중간중간마다 보이지만
너무 성실히 해서 이 책은 감점대상이다. 아니 그래도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다듬어야 하잖아.
당시 사건이 아무리 자극적이었다 해도 소설에서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인행각이나 시체처리의 묘사에 공을 들이나
거기에 고문과 학대를 과감하게 묘사하고 거기에 당해
정신이 부서져 사건 가해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가족의 모습까지
가감없이 묘사하면 보는 사람은 도대체 뭘 기대하며 이 소설을 읽어야하나
보통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의 통쾌한 해결이나
기묘한 추리트릭을 탐정 혹은 형사역을 맡은 주연들에 몰입하며
이들이 어떻게 트릭을 부수고 범인을 잡아내나 에 기대감을 갖는다.
그렇다면 짐승의 성은 추리소설로도 실책이다. 진범은 어떻게든
'처리' 되었지만,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의 손에 넘겨진게 아니라
결구 자신이 만든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의해 처분되었고
이마저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아 작중 형사의 언급으로
혹시나 진범이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여운을 남겨
불안감을 더 키운다. 물론 진범이자 만악의 근원이 살아있다면
생존자들이 불안에 떨테니 처분되었다 에 무게를 두지만
이런 엔딩은 어떻게 이런 인간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태어날 때부터
같은 인간을 먹이로만 보는 괴물을 처리할까 기대하며
이 끔찍하고 잔인한 연쇄살인사건을 지켜본 독자들을 배신한 행위다.

짐승의 성 의 소재를 제공한 실제 사건은 2000년대 후쿠오카 현
키타쿠슈 시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키타쿠슈 감금 살인사건이다.
한국 위키 백과에는 사건의 주범인 마쓰나가 후토시 에 대해서만 나와있지만
일본 위키 백과에 해당 사건의 개요나 피해자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도서관에서 아무에게나 빌려줘도 될 책이 아니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실화가 엽기살인사건이라지만
이 정도로 생생하게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고문방법을 묘사한 책을
어린아이도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 두다니. 
제정신인가 적어도 19금 표지라도 붙여야 할 책이다.

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밀리터리 SF 소설 중에 영화로 제작했지만 오히려 그 B급 감수성으로 원작보다 유명한 스타쉽 트루퍼스.
그 소설과 맞먹을 걸작이 또 하나 있으니 절판되었다가 황금가지에서 재판한 '영원한 전쟁' 이다.
작가 자신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경험에서 기반해 쓴 소설이라 그런가
소설의 초반 분위기는 전쟁이 필연적이다고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반전주의다.

소설 내용은 주인공인 만델라가 지적 육체적으로 엘리트인 남녀 최정예 징집법에 의해
지구권의 통합군 개념에 가까운 UNEF (국제연합 탐사군) 에 강제 입대해 외계 종족인
토오란과 전초전을 벌였다가 한번 제대하고 다시 재입대를 해 소령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흐른 세월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사이에 변해가는 지구권의 모습과 사회와 괴리된
만델라의 모습을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었다가 제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보여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다르게 외계와의 전쟁만으로 통합지구사회와 괴리될 수 없으니
추가 설정으로 등장한게 콜랩서 점프. 작중 설명만으로 유추해보면
블랙홀을 이용한 시공간 점프에 가까운데 이 콜랩서 점프로 인해
만델라 일행이 소속된 집단은 몇 년의 시간을 보내는데 지구 사회는 몇 십년
몇 백년의 시간이 흘러서 사회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군인 이란 클리세가 극대화된다.

만델라는 토오란과의 전초전을 준비하는 시기부터 입대한 경우라
그 때까지 인류는 제대로 전쟁을 준비하지 못 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타쉽트루퍼스에서도 나온 강화복 - 파이팅 슈츠 - 초기에는 이 파이팅 슈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에 훈련과정에서 사상자나 부상자가 셀 수 없니 나왔고
그 부작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델라 일병은 점점 숙련된 병사로 거듭난다.
토오란 외계인들과의 초전에서 만델라 일행은 승리하지만 그 승리도
숙달된 훈련과 파이팅 슈츠의 덕분이 아닌, 군대에서 인위적으로 주입된
'의사기억'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후최면 학습으로 잔인성을 표출한 경우다.
그렇게 2년에 걸친 복무가 끝나고 만델라는 함께 복무하면서 '의무 관계' 가 아닌
사랑에 기반한 연인 메리게이와 인연을 이어갈 생각으로 제대를 신청하고
군대에서 지구사회로 돌아왔지만 콜랩서 항법에 의해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구는 이성애가 아닌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권장받고, 국가사회는 붕괴했으며
히피이즘과 지역, 개인사회가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인구절벽에 봉착한 사회로 변했다.
이런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델라와 메리게이였지만
그 과정에서 둘 다 부모를 잃고 군대로 재입대해 군대에서나마
같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재입대 결과 둘은 다른 부대로 배치되고
콜랩서 항법이 있는 사회에서 다른 부대로 간다 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게된다는 의미이길래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만델라는 소령의 지위로 새로운 부대를 받게 되지만
새로운 부대는 동성애가 당연시되고 이성애가 배척받는 생각을 가진 곳이라
만델라는 작중 표현으로 올드 퀴어 (늙은 변태) 취급을 받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남게된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전쟁을 치룬 만델라와 병사들은
다시 지구에 귀환하고 이번에야말로 제대하겠다고
결심한 만델라를 또다시 바뀐 지구가 환영하는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유지되며
전쟁 속에서 군인들이 어떤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지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분명 필요한 전쟁이었겠지만
그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아니라
뒤에서 전쟁을 후원한 일반인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라는 메시지는
지금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쟁 동안에도 계속 변화해 온 사회와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재입대를 결심한 주인공과 연인의 모습은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군인들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눈팔기

도서관에 신청한 나츠메 소세키 전집도 슬슬 막바지.
한 달에 2권 신청받으면서 들어오는 기간도 늦으니 구립 도서관 서비스가 다 그렇죠 뭐..

나츠메 소세키의 작풍이라면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가 보기에 시대상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작가의 고민거리를 공유한다
그런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한눈팔기' 는 작가의 자전소설이라 싶을만큼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주인공인 겐조의 삶은 소세키의 삶과 비슷하고
당시 하이칼라 지식인의 무력함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무력함을 자조하고 있다.

영국유학을 다녀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겐조에게 과거가 덮쳐온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과거. 양자로 살던 시절 양아버지와 양어머니가
겐조를 찾아와 돈을 요구한다. 거기에 본가의 누나와 형, 처갓집까지
외국까지 다녀온 하이칼라 가 능력이 없을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겐조에게 기대를 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겐조 본인도 딱 잘라 거절하면 좋겠지만
본인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거절하지 못하고 불편한 심기를 아내와 나누지도 못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많은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현실은 앞마 보고 가기에 자신을 얽매고 있는 과거가 버겁기만하다.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겐조가 마지막에 자조적으로 서술하는 구절은 작가인 소세키가
자기에게 내뱉는 말인 듯 하다. 나츠메 소세키는 고민을 작중에서 극복하기보다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들이라며 솔직히 보여주면서 
고민하기에 인간이다 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문학을 처음으로 접한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입시와 판타지 소설 본다고? 제대로 세계문학은 접하지 않았다가
대학 들어가고 나서 서양사 수업을 듣던 중 담당교수가 하필
러시아 문학 빠돌이 -_-)z 결국 그 학기는 러시아 문학과 영화로
레포트를 빼곡이 채웠고 학기 끝나고도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기 시작한게
러시아 문학 덕질의 시작이었다 -_-)ㅋ

이번 안나 카레니나 번역은 문학동네에서 펴낸 번역판.
박형규 교수가 번역을 했고 2010년에 나온 책이니 
시기상으로 최신에 가까운 번역본이다. 

스토리는 제목인 안나 카레니나 에 집중해서 보자면 단순하다.
사랑 없이 결혼한 유부녀 안나 에게 브론스키 라는 청년이 열정적으로
접근해 사랑에 눈을 뜨고 브론스키에 대한 애정만으로 남편도 아이도
버리고 불륜을 시작했다가 다시 남겨진 아들에 대한 애정에 갈팡질팡하며
정신적으로 부서지고 무너지다가 마지막에는 열차투신으로 끝.

하지만 이 단순한 플롯 안에 레프 톨스토이는 당대 러시아 사회에 대한
심도깊은 해석과 귀족 농노 사회주의자 다양한 집단에 대한 묘사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소설 첫 문장처럼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수많은 부부를 그리고 있다.

타인이 보기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사랑만으로 불륜을 시작한 안나
안나를 사랑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냉정하고 일에만 몰두한 알렉세이
자유롭고 감정에 솔직한 삶을 살기 위해 출셋길을 포기한 브론스키
불륜에 빠진 남편을 두고 있지만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마음을 다진 돌리
세상일을 전부 감정에 따라 처리하고 즐기기만 하는 스테판
농노-노동자에 대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지만 귀족-계몽자 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레빈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서술은 다양하다 못해 치열할 정도.
거기에 삶과 죽음, 종교, 결혼, 계급, 농민, 노동자, 정말 온갖 고민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톨스토이가 대단한 점이 이런 문제는 작가가 신의 시점에서
판단내리지도 않고 담담히 서술했다는 점이다. 독자가 작품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작가에게 기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작가의 판단' 을 보류하며
대신 작가 자신이 간접경험이던 직접경험이든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라고 말하듯.

소설에서 큰 축이라면 안나 카레니나의 결혼 생활과 레빈의 결혼 생활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져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가정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면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했고, 한번 구애에 실패했던 레빈은
자신의 영지에서 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레빈과 마찬가지로 연애에
실패했지만 여행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았던 키티에게 다시 구애한다.
감정에 충실했던 안나를 둘러싼 브론스키, 알렉세이 두 남자는 불행해졌지만
감정에 충실하면서 감정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키티와 레빈 부부는 행복해졌다. 굳이 말하자면 이 두 부부를 보면서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학생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뭐가 남을까' 였다에
강박감이 있었다.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까 모르는 세계문학 / 필독서라면
그 경우는 더 심해진다. 하지만 읽으면서 확실하게 '이거다' 싶은 부분은 없었다.
다양한 인물상과 사회상에 대한 묘사, 심리서술, 사회에 대한 고찰은
대단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런 서술들 중에서 마음에 딱 이거다 하고
확실하게 기록을 남겨주거나 어딘가에 써두고 싶은 구절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질테고
그럴 바에는 지금 남아있는 여운만이라도 적어두는 편이 더 생산적이다
그 생각에 적어준다면 나중에 다시 이 포스팅을 보면서 인상적인 내용이 생각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