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도서관에 정기구입도서들이 들어왔길래 어떤 책들을 볼까 골라보다가
표지의 손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고 골라온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펼져볼 때는 책의 활자도 적당하고 줄간격도 촘촘하지 않아서 설렁설렁 읽기 편하겠다 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책을 던져버렸다. 이 기분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찝찝하고 불쾌하고 속에 뭔가 얹혀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기분인데
그렇다고 안 봤다고 정신승리하고 빨리 다른 책 잡아서 힐링하기엔
너무 씁슬한 이런 기분을 정말 뭐라고 해야할지 표현하기 힘드네요.

선코트마치다 403호,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었다!
2002년 전모가 드러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밀도 높은 미스터리 『짐승의 성』. 혼다 테쓰야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야마다 후타로 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월간지 '소설 추리'에 연재되던 때부터 끔찍한 범죄와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문제작이라 불리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년 넘게 선코트마치다라는 맨션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온 상처투성이 소녀 마야.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은 음식물 쓰레기가 썩은 듯한 역겨운 냄새와 함께 역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있는 아쓰코를 마주한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시인하지만, 맨션 욕실에서는 엄청난 양의 루미놀 반응과 무려 다섯 사람 분의 DNA가 검출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하는 끔찍한 진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지옥을 만들어낸 요시오라는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한편 같은 동네의 어느 연립주택, 신고는 사랑스러운 연인 세이코와 동거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자 곰을 닮은 남자가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먹고 있다. 세이코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소개하지만, 예전에 보여줬던 사진 속의 아버지와는 분명 다르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남자의 가방 속에서 발견한 검붉은 액체는 대체 뭘까? 남자의 수상쩍은 행동을 감시하던 신고는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보통 책을 고를 때, 먼저 책을 펼쳐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고
소설이라면 앞이나 뒤로 넘어가 책의 시놉시스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서문 정도 읽어보고 여기까지 통과하면
좋은 책이다 싶어 사두는데, 근처에 도서관이 생긴 뒤로는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정을 추가해둔다. 통독으로 빠르게 읽어보고
감동을 주는 책이라면 바로 서재에 추가한다. 그렇게 보자면
짐승의 성은 서재에 들여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작가인 혼다 테스야가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사건 관련 조사는 성실히 한 흔적이 책 중간중간마다 보이지만
너무 성실히 해서 이 책은 감점대상이다. 아니 그래도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다듬어야 하잖아.
당시 사건이 아무리 자극적이었다 해도 소설에서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인행각이나 시체처리의 묘사에 공을 들이나
거기에 고문과 학대를 과감하게 묘사하고 거기에 당해
정신이 부서져 사건 가해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가족의 모습까지
가감없이 묘사하면 보는 사람은 도대체 뭘 기대하며 이 소설을 읽어야하나
보통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의 통쾌한 해결이나
기묘한 추리트릭을 탐정 혹은 형사역을 맡은 주연들에 몰입하며
이들이 어떻게 트릭을 부수고 범인을 잡아내나 에 기대감을 갖는다.
그렇다면 짐승의 성은 추리소설로도 실책이다. 진범은 어떻게든
'처리' 되었지만,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의 손에 넘겨진게 아니라
결구 자신이 만든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의해 처분되었고
이마저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아 작중 형사의 언급으로
혹시나 진범이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여운을 남겨
불안감을 더 키운다. 물론 진범이자 만악의 근원이 살아있다면
생존자들이 불안에 떨테니 처분되었다 에 무게를 두지만
이런 엔딩은 어떻게 이런 인간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태어날 때부터
같은 인간을 먹이로만 보는 괴물을 처리할까 기대하며
이 끔찍하고 잔인한 연쇄살인사건을 지켜본 독자들을 배신한 행위다.

짐승의 성 의 소재를 제공한 실제 사건은 2000년대 후쿠오카 현
키타쿠슈 시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키타쿠슈 감금 살인사건이다.
한국 위키 백과에는 사건의 주범인 마쓰나가 후토시 에 대해서만 나와있지만
일본 위키 백과에 해당 사건의 개요나 피해자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도서관에서 아무에게나 빌려줘도 될 책이 아니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실화가 엽기살인사건이라지만
이 정도로 생생하게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고문방법을 묘사한 책을
어린아이도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 두다니. 
제정신인가 적어도 19금 표지라도 붙여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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